어느 요양원 할머니의 편지
나이 들고 병들어 누우니 잘난 자나 못난 자나
너, 나 할 것 없이 남의 손 빌려 하루를 살더이다,
그래도 살아 있어 남의 손에 끼니를 이어가며
똥 오줌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구려!
당당하던 그 기세 허망하고 허망하구려.
내 형제, 내 식구가 최고인 양,
남을 업신여기지 마시구려.
내 형제 내 식구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바로 그 남이,
어쩌면 이토록 고맙게 웃는 얼굴로
날 이렇게 잘도 돌보아 주더이다.
아들 낳으면 일촌이요,
사춘기가 되니 남남이고,
대학가면 사촌이고,
군대가면 손님이요,
군대 다녀오면 팔촌이더이다.
장가가면 사돈되고,
이민가니 해외동포 되더이다.
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이고
딸만 둘이면 은메달인데,
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이 되고
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 하더이다.
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 되고,
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요,
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구려.
자식들 모두 출가시켜 놓으니
아들은 큰 도둑이요,
며느리는 좀도둑이요,
딸은 예쁜 도둑이더이다.
-- 방송인 최유라님이 소개한 편지에서 --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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